소설가 송하훈의 장편소설 ‘박치기왕 김일’(3)

한국자치신문 | 기사입력 2025/10/21 [16:20]

소설가 송하훈의 장편소설 ‘박치기왕 김일’(3)

한국자치신문 | 입력 : 2025/10/21 [16:20]

한국자치신문이 세계적인 영웅 제일교포 역도산의 수제자 고흥군민의 영웅이자 대한민국의 영웅인 박치기왕 김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을 연재한다. 

넘쳐나는 기사들로 도저히 할애 할수 없는 지면을 더군다나 안수원작가의 장편소설 배달의 연재를 중단하면서까지 송하훈 작가의 청을 수락하기로 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역도산은 김일에게 하나의 등불이 될 것이야.” 그는 김일의 이름을 부르며 친형처럼 따뜻하게 말했다.

“네. 시방 제 몸이 몹시 떨리고 있구만요.”

“역도산도 김일처럼 씨름선수였잖은가? 역도산의 형도 최고 씨름꾼이었으니 혈통이 매우 좋다고 말할 수 있겠지.”

“제 아버님도 구척 장신이십니다. 제 할아버지는 장수셨구요.”

김일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 할아버지 말을 꺼내고 말았는데,  기실 혈통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었다.

“그래애? 듣고 보니 참으로 훌륭한 집안이군. 그 정도라면 호문(豪門)의 자제가 아니겠는가? 호걸의 집안이다 그말일세” 

김일의 말에 김 선장이 번쩍 눈을 뜨더니 맥주 한 잔을 시원스레 들이켰다.

“역시 내가 사람은 잘 보았군.”

순간, 김일의 몸은 어느 틈에 현해탄을 건너고 있었고, 드넓은 바다 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머리 위로 온통 부어지는 것을 느꼈다.

김일은 넉넉한 웃음으로 바라보는 김 선장과 헤어진 후 거금도를 향하는 통통배에 몸을 실었다. 거금도와 여수항을 오가기 수 년. 때로는 태풍을 만나 혼나기도 하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겪기도 했다. 한번은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으로 배가 파도에 뒤집어질 절박한 위험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때 통통배 선장은 고물 끝에 긴 밧줄을 늘어뜨려 배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조치했다. 긴 밧줄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잡아당기는 힘으로 인해 배를 훨씬 안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센 파도는 산더미처럼 밀려오면서 당장이라도 배를 삼킬 듯이 으르렁거렸다. 선장은 그날따라 많은 인원의 장사꾼들을 모두 선실로 내려가게 한 다음 선실문을 꽝꽝 대못질을 해버렸다.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김일을 비롯해 다른 장사꾼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어 서로 부둥켜안고 벌벌 떨어야만 했는데, 배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솟구치기를 반복하면서 간신히 풍랑의 한가운데를 빠져나온 적도 있었다.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소리를 내지르며 지나갔다. 저 갈매기처럼 날개만 있다면 현해탄을 건너갈 수 있을까? 무역선의 선원들이 수백 km를 건너서 일본 땅을 오가는 것이 너무나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가면 역도산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갈 수가 없는 땅이었다. 가기만 한다면 가난과 배고픔을 씻어줄 것만 같았지만 무슨 수로 간단 말인가.

그 놈의 가난. 어떻게 해야만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리칠 수 있을까. 그게 김일의 화두였다. 그래서 뼈 빠지게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상당히 떨어진 바닷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았고,  여수를 오갔으며 각종 씨름대회에 참가해 황소를 타오곤 했던 것이었다.

물론 가난하다고 해서 삼시세끼 거르거나 책력 보아 가며 밥 먹는 일은 없다지만 무엇 하나 넉넉한 살림두량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인이었던 김일의 아버지는 비단가난으로 살면서도 오히려  이웃 돌보기를 제 몸처럼 여겼다. 이웃집 담벼락이라도 허물어지면 당신의 일이나 되는 것처럼 흙을 이기고 돌을 모아 원상복구를 해주는가하면, 남의 논에 방천이라도 나는 날이면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도아주곤 했다. 특히 아버지는 힘이 좋았으므로 큰 돌도 번쩍번쩍 들어 올려 어떤 일이든 쉽게 해냈다. 

“김일이 자네 오늘따라 이상하네?”

거금도로 돌아가는 통통배 선장이 키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배를 몰고 가다가 김일을 힐끔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평소 같으면 휘파람을 불며 바다에 둥둥 떠서 졸고 있는 섬들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선실 안에 벌렁 누워 선잠에 빠지기가 일쑤였는데 이번 뱃길은 그게 아니었다. 마치 탱자나무 가시에 콕 찔린 사람처럼 짜증스러운 표정 같기도 하고, 쓰잘데기없는 생각이나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표정 같기도 하고, 어쩌면 한 대 되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 있는 낯빛이었다.

“예에?”

김일은 선장의 말에 깜짝 놀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오직 한 생각에 자꾸만 빠져들어 갔는데, 그것은 밀항이었다.

밀항. 그렇다. 그 길만이 유일하게 내가 살아날 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밀항에 성공해도 막상 일본 땅에 닿으면 차별대우를 당하거나 도착하기가 무섭게 붙잡혀 감옥살이를 해야만 한다는 말은 이미 들은 터였다. 게다가 단순히 먹고사는 목적으로 밀항을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할 일이기도 했다. 밀항을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역도산의 제자가 되는 것이 그 첫 번째 목적이요, 유명한 프로레슬러가 되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었다.

김일은 역도산이 실린 잡지를 아예 가슴에 품은 채 뜬 눈으로 꼬박 며칠 째 밤을 보내며 보냈다. 골백번을 보아도 싫증이 나질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역도산처럼 우람한 근육질의 몸으로 변해가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거금도에서 농사짓고 고기 잡고 명절 날 씨름대회에 나가서 소나 타내는 개미 쳇바퀴 같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

김일은 아무도 모르게 혼자 바닷가로 나갔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기필코 밀항을 해서라도 역도산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추석이 다가왔다. 밀항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출전해서 상을 타야만 했다.  

씨름은 호남씨름대회였다. 그런 만큼 시골장터에서 벌어지는 씨름대회와는 그 규모가 달랐다. 우승한 씨름꾼에게는 부룩송아지 정도가 아니라 어미소 한 마리가 주어지는 경기였다. 말이 어미소지 밭 갈고 논 갈고 거기다가 수레까지 끌고 다니는 소는 단연 농가의 으뜸가는 재산 목록 1호였다.

그날 씨름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경기장 주변에는 널찍한 덕석을 깔아놓고 돈 먹기 윷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4말이 29발의 윷판을 돌아갈 때 따라잡기도 하고 죽기도 할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이 엇갈렸다. 다른 한 쪽에서는 화투로 노름판이 벌어지고 있었고, 막대를 돌려 바늘이 멈추는 칸에 상품을 가져가는 팽이놀음도 벌어지고 있었다.

씨름대회장 주변에는 이 뿐만 아니라 별아 별 장사꾼이 진치고 있었다. 낫이며, 호미며 칼 등을 파는 장사꾼이 있는가 하면, 삼태기나 소쿠리를 잔뜩 가져와 펼쳐놓고 파는 장사꾼도 있었고, 참빗과 고무신을 파는 장사꾼도 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국밥에 막걸리를 파는 임시 주막도 있었고,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사탕을 파는 곳도 있었다.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이럴 때 기회 잡아 물건 하나라도 팔아서 호구지책을 삼으려는 심산에서였다. 

여름 내내 불볕을 무릅쓰고 불어터진 보리밥에 시어빠진 물김치로 끼니를 이어가며 농사를 지었던 농사꾼들에게 추석처럼 반가운 명절이 또 있으랴. 무엇보다도 노르스름한 빛깔의 햅쌀밥을 먹는 달콤함이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열린 씨름대회에 군중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에 씨름꾼이 씨름을 할 수 있도록 둥글게 모래를 깔고 모래 주변으로 통통한 금줄의 경계선이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드디어 결승전. 사회자의 목청은 한껏 높아졌고 관중들이 시선은 일제히 두 역사(力士)에게 꽂혔다.

김일은 밀항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상대를 이겨야만 했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연거푸 두 번을 때려눕힐 수 있었고, 소를 탔다. 김일은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가까운 5일장에 나가서 소를 팔았을 때 목돈을 쥘 수 있었다. 꽤 큰돈으로 김일의 장래를 약속할 밑천이었다.   

며칠 후, 김일은 무작정 고금도 용두산 자락에 반지처럼 엎드려 있는 송광암으로 올라갔다.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을 가면 반드시 그곳을 가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정겹고 소롯이 생각나는 사찰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법당 안에 졸고 계시는 부처님들이 무섭기도 하고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고추자짓적 시절 말고는 처음이어서인지 마음이 설레기까지 하였다. 

송광암은 송광사의 말사로 천년고찰이었다. 800여 년 전 고려 신종3년 서기 1209년에 해동불일 보조국사가 창건했다는 절이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이른 시각인데도 저녁 종소리가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종소리는 거금팔경의 하나였다. 거금팔경으로 송암모종(松庵暮鐘), 망천춘우(輞川春雨), 적대기운(赤臺起雲), 죽도관어(竹島觀魚), 연소추월(連沼秋月), 석교낙안(石橋落雁), 월포귀범(月浦歸帆), 사봉낙조(蓑峰落照)인데 제1경이 송광암 저녁 종소리였던 것이다.

송광암 반야대에서 내려다보는 아래 세상은 장관이었다. 크고 작은 다도해의 섬들이 펼쳐지면서 가삿빛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여 있는 바다가 극락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느티나무가 보였다. 푸른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느티나무를 보면서 아직은 자신이 젊다는 것을 느꼈다.

김일은 극락전(極樂殿)으로 들어갔다. 극락전에서는 두 분의 스님이 저녁 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지시임귀며엉례에 삼계도사사아생자부우 시아본사아서어가모니이부우울….

김일은 스님 뒤로 앉아 무릎을 꿇고 삼배를 한 다음 정면을 바라보았다. 한 가운데는 아미타여래좌상이 있고 양쪽으로는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미타여래좌상과 잡지 속에 보았던 역도산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이었다.

서방극락정토에 살면서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시는 아미타불이시여! 저는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곧 극락세계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역도산 선생님을 꼭 만나게 해주십시오. 역도산 선생님을 꼭 만나게 해주십시오.

아무런 말이 없던 아미타불이 문득 입을 열고 묻는다. 왜 만나려는고?

네.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는 길만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김일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언제까지고 농사짓고 물고기만 잡아야 합니까? 제게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꼭.

이번에는 대세지보살상을 향해 눈길을 주며 빌었다. 아미타불 오른쪽에 계시는 대세지보살이시여! 지혜의 문을 대표하여 중생을 삼악도에서 건지는 무상(無上)의 힘을 지니셨기에 비옵니다.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역도산 선생님을 꼭 만나게 해주십시오.

아무런 말이 없던 대세지보살이 문득 입을 열고 묻는다. 왜 만나려는고?

네. 저는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 운동선수가 되고 싶습니다요. 저는 타고나기를 운동을 해야 할 몸입니다. 이 지역에서 씨름이나 하는 정도로는 양이 차질 않습니다.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운동선수로서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꼭. 역도산 선생님을 꼭 마나게 해주십시오,

이번에는 아미타불 왼쪽에 계신 관세음보살이시여!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어 구제와 이익을 안겨주는 관세음보살께 비나이다.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꼭 만나게 해주십시오.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는 게 제 간절한 소망입니다요. 관음보살이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묻는다. 왜 만나려는고?

네. 저는 우리나라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요. 일제 강점기를 거쳐 남북이 분단된 이 나라의 위엄과 자존심을 살리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인의 늠름한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요.

김일은 108배를 하면서 속으로 뇌까리듯 이렇게 기도를 하였다. 이윽고 저녁예불이 끝나고 법당 밖으로 나갔을 때 암주(庵主)인 노승이 물었다.

“뭘 열심히 기도를 하던데 처사님은 혹 김일 선수 아닌가? 그 씨름을 잘한다는 ……”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김일이 깜짝 놀란 시늉을 하며 물었다.

“고금도에서 암자 지키며 사는 땡중이 김일 처사를 모른대서야 말이 되겠나? 허허허!”

“스님. 인사드리겠습니다. 김일이라고 합니다.”

김일이 합장을 하며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노승은 법랍이 꽤 되어 보이는데도 허리 하나 굽어지지 않고 꼿꼿했고 얼굴은 검버섯이 몇 점 보일 뿐 주름살 한 가닥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입고 있는 승복은 남루했고 바느질이 여러 곳을 꿰맨 상태였다. 하긴 깊은 산중의 산승이 고급 천의 비싼 옷을 입고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소박하고 절도 있게 절을 꾸려가는 것이 역력했다. “예까지 찾아와줘서 반갑군. 그럼 차라도 한 잔 하지.”

노승은 자신이 거처하던 방으로 안내했다. “섬에서 중노릇을 하고 지내는 산승이지만 이렇게 유명한 싸름 선수를 다 만나다니 ……. 그래, 부처님께 뭘 빌고 싶은 일이라도 생겼을꼬?”

“아닙니다. 그냥 건강을 축원했을 따름입니다.” 김일이 짐짓 시치미를 떼고 둘러댔다.

“김일 처사 얼굴에 나타나 있는걸. 뭔가 간절한 소망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

너무나 자신을 꿰뚫어본다고 판단한 김일이 낮은 목소리로 토로했다.

“일본엘 가고 싶은 데 아직 그 방법을 못 찾고 있습니다.”

“일본은 왜 가실려구?” 

“역도산 선생님이라고 혹 들어보셨는지요?”

“풍문으로 듣긴 했어도 자세히는 모르지.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으로 이름을 떨친다는 정도 밖에.”

“바로 그 역도산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부처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럼 역도산 그 분 제자가 되고 싶은 게군요.”

“그렇습니다.”

“땡중이지만 혹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한마디 하지. 우리 불교에서는 <설산동자>란 얘기가 있어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인데 한때 설산동자로 출가하여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행을 하고 있었지. 깊은 명상에 빠져있을 때 하늘의 제왕이라고 하는 제석천이 설산동자를 시험하고자 험상궂은 야차로 변신 한 후 진리의 게송을 한 구절 읊었어.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며 그것이 생멸의 이치이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않고 그래서 지극히 덧없음을 설파한 말이야. 이 말은 들은 설산동자는 이 한 마디 게송만으로도 크게 희열을 느끼겠는데, 그 다음이 몹시 궁금해졌어. 그래서 나머지 게송을 들려달라고 간절히 간청하였으나, 야치는 배가 고파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대답했지. 설산동자는 맛있는 음식을 구해다 줄 터이니 제발 나머지 게송을 들려달라고 하자, 야차는 살아있는 사람의 피만 먹는다고 하는 것이었어. 설산동자는 다음 게송을 들려주면 내 몸을 그대에게 바치겠다고 약속을 하자 야차는 이렇게 마지막 게송을 읊었지.

생멸멸이 적멸위락(生滅滅已 寂滅爲樂)

(태어남과 사라짐이 다 소멸하고 난 적멸의 상태가 바로 지극한 즐거움이라.)   

인간이 나고 죽는 것 자체가 모두 사라졌을 때 적멸이고 극락이라는 게송을 들은 설산동자는, 바로 그것이 진리임을 깨닫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버리지.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진리만 구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구도자의 자세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여자로 변신했던 제석천은 설산동자가 자신의 몸을 기꺼이 바치는 모습을 보고 얼른 몸을 받아서 공손히 땅에 내려놓았어. 그리고 자신은 야차가 아니고 하늘의 제석천이라고 고백하면서 설산동자의 원력을 시험하고자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어. 이를 위법구망도(爲法驅忘圖)라고 하여 사찰의 벽화로 자주 사용되고 있지. 자,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설산동자가 진리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모습이야. 김일 처사가 한 번 목표를 세워서 이루고자 하면, 목숨을 간다는 마음으로 하고자 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이지.”

“아, 예.” 김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란 말도 있어. 옛날 석상 화상이 이렇게 말했지. ‘100척이나 되는 대나무 꼭대기에서 어떻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는가’ 물었고, 또 다른 옛 스님은 ‘100척이나 되는 대나무 꼭대기에서 반드시 한 걸음 나아가야만 시방세계가 자신의 전체 모습을 비로소 드러내게 될 것이다’라고 말이지. 당연히 100척 높이의 대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아마도 대나무 꼭대기에서 서 있기도 힘든 일이겠고. 하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야만 하는데, 불교의 최고 이념인 자비를 완성하기 위해서야. 그렇다면 일본을 가서 역도산 선생을 만난다 하더라도 백척간두 진일보의 정신으로 하다보면 성공할 수 있지 않겠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스님! 제가 일본 갈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씀, 누구에게도 하셔서는 안 됩니다.”

김일은 부모님은 물론 가까운 친구에게도 일체 비밀로 하고 있었다. 행여 눈치라도 챌까봐 전전긍긍하며 지내고 있었다.

“허허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감사합니다, 스님.”

“해가 졌으니 여기서 자고 낼 새벽에 부처님께 108배를 드리고 떠나시게. 아마도 극락전의 영험이 그대에게 미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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