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돌이가 절에 들어온 것은 나이 6섯 살 때 일이었다. 6,25가 일어나고 전쟁고아로 떠돌던 걸음마 아기를 군인들이 업어다가 북진하면서 절에 맡겨진 것이다 절에는 또래 아이들이 서넛 명 있었다. 전쟁 중이라 변변한 시주도 없는 스님들은 자신들의 목구멍 풀칠도 버거운데 고아들 뒤치다 거리까지 책임져야하니 힘들 법도 한데 자비를 베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시는 불자들이어서 그런지 전혀 힘들어 하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철없는 순돌이나 고아들은 그런 스님들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고아들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스님들의 따스한 보살핌 덕분인지 여느 어염 집 아이들처럼 스님들을 귀찮게 하며 개구쟁이들의 본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동자승의 티를 갖 벗어난 애숭이 스님들이 이런 고아들을 나무래기도 하며 구박을 하기도 하나 그것도 주지 노 스님이 모르게 혼을 내야지 만약에 주지 노 스님에게 들키거나 고아들이 고자질하면 솜털나기 동자승은 치도곤을 당하기 일쑤다. 사실 몇몇 동자승도 버려진 고아들을 노 스님이 데려다 스님으로 입적시킨 것이다. 알고 보면 똑같은 고아출신이다 모두가 전쟁 통에 부모님이 죽거나 생이별을 당한 처지이다. 전쟁이 길어지니 비극은 도처에서 더 깊고 넓게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순돌아가 이절에 들어오면서 난처한 문제가 벌어지고 말았다. 노 스님에게는 국군장군 동생이 있었다. 별을 단 국군의 장군이었다. 스님이나 장군은 전쟁 전에는 북한 땅 출신이었다. 당연히 북한군에 입대했으며 용감한 북한군 장교였다 그런데 북한군에 있으면서 북한군의 추악한 동족살상의 범죄행위를 보고 일개 대대병력과 함께 남한군에 귀순하여서 장군에까지 오르게 되고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북한 치하에 있던 장군의 부인은 장군이 대대병력을 데리고 귀순을 하자 반동분자로 잡혀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처형 직전에 친정에 가있는 딸 영희를 구하기 위해 집에서 부리는 머슴 돌쇠를 친정으로 보내서 시숙님 되시는 노 스님에게 보내진 것이다. 그런데 노 스님의 조카인 영희에게는 머슴돌쇠에 의해서 이절에 영희와 함께 와있는 철수 오빠가 있었다. 그러니까 철수는 영희의 친오빠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희는 4살이 되고 철수는 일곱 살이다. 순돌이는 6살이다. 문제는 영희를 가지고 철수와 순돌이가 서로 자기 친동생이라고 우기는 대서 매번 분쟁의 벌어지곤 했다. 노 스님도 이문제 만큼은 뾰쪽한 해결방법이 없었다. 이미 순돌이가 북진하는 국군에 의해서 이절에 맡겨지기 전에 철수와 영희는 이절에 와있었다. 그러니까 순돌이가 뒤늦게 이절에 맡겨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은 순돌이가 영희를 처음 볼 때 부터 자기 동생이라고 우기는 것이었다. 전쟁 통에 잃어버린 자기 동생이라는 것이다. 물론 영희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노 스님도 순돌이의 전후 사정은 알수가 없었으니 무어라 딱히 참견 할 수도 나무랄 수도 없었다. 혹여 전쟁 중에 정신적인 상처를 받아서 정상적이지 않는가 의심도 해보았으나 그러한 행동을 제외하면 순돌이의 모든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북진했던 국군이 후퇴를 하고 3.8선에서 전쟁이 소강상태를 지속하고 있었다. 어느 날 변함없이 절 뒷산을 놀러 나갔던 순돌이와 영희는 벼랑 끝에서 맞닥뜨린 낙오병 북한군의 총 앞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동생 영희를 구하겠다는 일념의 순돌이와 함께 북한군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8살이 된 순돌이의 어디에 북한군을 절벽 아래로 떠밀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긴 것일까 아이들이라 방심하고 있었던 북한군은 순돌이와 함께 절벽에서 찟기에 있었다. 지금도 강원도 은주사에는 순돌이의 넋을 기리는 제가 매년 올려지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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